본문 바로가기

드라마리뷰11

[드라마리뷰] 왜 오수재인가 - 우리가 '믿음'을 말할 때 수재는 이 '바닥'의 생리를 깊숙이 아는 사람이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인간들의 속내에는 더러운 진창이 숨어있다. 다들 짐작한다고 말하겠지만, 현실은 늘 그 이상이다. 수재는 그 '이상'의 세계가 얼마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지 안다. 철 없던 한 때, 그들이 만든 진창에 온 몸으로 굴러봤으니까. 적어도 그들에게 진심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순진했던 때에. 그 믿음으로 따뜻한 뭔가를 꿈꾸기도 했던 오래전 그 때에. 떠날 수 있었다. 도망칠 수 있었다.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수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 인생을 바닥에 내친 자들에게, 주제를 모른다고 함부로 떠들어댄 자들에게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대가로 그들은 부와 명예를 약속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것들을 누리게 해주겠노라고. 물론 그 말을 믿지.. 2022. 6. 24.
[드라마리뷰] 나의 해방일지 14회 - 추운 삶들이 서로를 끌어안는 순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채 시간은 흐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살아있던 사람이 이제 세상에 없다는 느낌은 도무지 믿기 어려운 감각이다. 밥솥에는 아직 그녀가 짓던 밥이 남아있고, 빨래통에는 여전히 그녀가 입던 옷이 있고, 현관에는 그녀가 신던 장화가 고스란히 놓여있다. 두고 떠난 사람에겐 이제 '책임'이 없다. 빈 자리를 정돈하고 치우는 것은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엄마 혜숙은 언뜻 보기에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늘 어디에나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눈을 뜨자마자 잠드는 순간까지 그 일들을 무탈히 수행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제호와 삼 남매의 '일상'은 오롯이 그 혜숙의 움직임 위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변화 무쌍한 그.. 2022. 5. 27.
[드라마리뷰] 나의 해방일지 13회 -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언젠가 떠나 집으로 가고 싶다. 부하직원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구 씨는 지금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깨닫는다. 집. 나는 집으로 가고 싶다. 그렇다면 내 집은 어디인가. 편하게 쉴 수 있고 아무렇게나 나인 채 있어도 괜찮은 그런 곳은 어디인가. 자연스럽게 생각은 산포로 향한다. 그리고 걸음은 자연스레 그 생각을 따랐다. 그렇게 이 겨울, 구 씨는 다시 지하철에 오른다. 언젠가 산포로 향했던 그 때처럼, 그리고 그곳을 떠났던 그 때처럼 불쑥. 그리고 잊은 적 없는 그 때 그러했듯 지하철 역 앞에서 한 사람을 기다린다. 하지만 도착해야할 사람은 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한 밤중에도 묘한 생기가 흐르던 길은 이제 지나치게 고요하고 쓸쓸하다. 어둠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풍경들은 너무 많이 달라져있다. 그래, .. 2022. 5. 22.
[드라마리뷰] 나의 해방일지 11회 12회 - 나의 쉴곳은 어디에 어떤 일이든 혼자 삭이는 것이 더 익숙했던 때가 있었다. 미정은 그렇게 모든 순간 입을 꾹 다물고 버텼다. '버텼다'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일이 벌어졌으므로 벌어지게 두었고, 누군가 그런 말을 뱉었으므로 그냥 뱉게 두었다. 그런 일에 일일이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 단정하게 그 시간들을 견뎌내고 싶었다. '의지'라기 보단 선택이었다. 그녀는 풀어내고 쏟아내는 쪽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삶은 그토록 불편하고 부족하고 권태로웠던 걸까. 적당히 버티고 적당히 웃으며 지내는 동안 미정은 스스로의 영혼이 조금씩 흐릿해져간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연기처럼 형태도 없이, 색깔도 없이, 향기도 없이. 그렇게 조금씩 소멸해가고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 2022.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