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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구5

[드라마리뷰] 나의 해방일지 14회 - 추운 삶들이 서로를 끌어안는 순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채 시간은 흐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살아있던 사람이 이제 세상에 없다는 느낌은 도무지 믿기 어려운 감각이다. 밥솥에는 아직 그녀가 짓던 밥이 남아있고, 빨래통에는 여전히 그녀가 입던 옷이 있고, 현관에는 그녀가 신던 장화가 고스란히 놓여있다. 두고 떠난 사람에겐 이제 '책임'이 없다. 빈 자리를 정돈하고 치우는 것은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엄마 혜숙은 언뜻 보기에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늘 어디에나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눈을 뜨자마자 잠드는 순간까지 그 일들을 무탈히 수행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제호와 삼 남매의 '일상'은 오롯이 그 혜숙의 움직임 위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변화 무쌍한 그.. 2022. 5. 27.
[드라마리뷰] 나의 해방일지 11회 12회 - 나의 쉴곳은 어디에 어떤 일이든 혼자 삭이는 것이 더 익숙했던 때가 있었다. 미정은 그렇게 모든 순간 입을 꾹 다물고 버텼다. '버텼다'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일이 벌어졌으므로 벌어지게 두었고, 누군가 그런 말을 뱉었으므로 그냥 뱉게 두었다. 그런 일에 일일이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 단정하게 그 시간들을 견뎌내고 싶었다. '의지'라기 보단 선택이었다. 그녀는 풀어내고 쏟아내는 쪽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삶은 그토록 불편하고 부족하고 권태로웠던 걸까. 적당히 버티고 적당히 웃으며 지내는 동안 미정은 스스로의 영혼이 조금씩 흐릿해져간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연기처럼 형태도 없이, 색깔도 없이, 향기도 없이. 그렇게 조금씩 소멸해가고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 2022. 5. 21.
[드라마리뷰] 나의 해방일지 5회 6회 - 오늘 하루를 견디도록 하는 힘은 1. 우리가 기다리는 순간 창희는 구 씨의 도약을 잊지 못한다. 매일 만나는 동네 친구들에게 온종일 그 이야기만 할 정도로.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을 목격한 것처럼 들떠있는 그의 모습에 친구들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듣다 못해 구 씨 얘기 좀 그만하라고 면박 주는 친구에게 창희는 말한다. 설레는 일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이 작은 동네에서 도무지 희열에 휩싸일 일같은게 없어서,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멀리 뛰는 것만 보고도 이렇게 흥분되는 거라고. 창희는 이 작은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이 대체로 지루하다. 좋게 말해 평화로운 이 동네는, 나쁘게 보자면 아무런 변화가 없다. 시대는 변하고 세상은 하루하루 달라지는데 앞뒤로 꽉꽉 막힌 아버지는 변화를 제시하는 창희의 말에 조금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평소에.. 2022. 5. 4.
[드라마리뷰] 나의 해방일지 3회 4회 - 나는 어디에 묶여있는 사람일까? 1. 해방이 하고 싶어요 미정의 회사에는 행복지원센터가 있다. 그러나 '행복'을 '지원'해준다는 그곳에서 권하는 동호회 활동은 막상 미정에겐 부담스럽기만 했다. 동료들은 그냥 적당히 아무거나 하라고, 일단 하기만 하면 지원금도 나오지 않느냐고 얘기한다. 맞는 말이다. 집이 멀고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말처럼 그냥 적당히 어울려서 어떤 무리 사이에 끼어있으면 굳이 행복지원센터에 불려다닐 일도 별종 취급 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눈치껏 웃고 어울리다가 눈치껏 돌아가면 된다는 것. 미정이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문제는 다만, 그 활동들이 미정의 행복을 전혀 지원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동료들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과 속사정을 터놓을만큼 가깝지도 .. 2022.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