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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REVIEW

[드라마리뷰] 나의 해방일지 3회 4회 - 나는 어디에 묶여있는 사람일까?

by _슬 2022. 5. 3.




1. 해방이 하고 싶어요



미정의 회사에는 행복지원센터가 있다.

그러나 '행복'을 '지원'해준다는 그곳에서 권하는 동호회 활동은 막상 미정에겐 부담스럽기만 했다. 동료들은 그냥 적당히 아무거나 하라고, 일단 하기만 하면 지원금도 나오지 않느냐고 얘기한다. 맞는 말이다. 집이 멀고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말처럼 그냥 적당히 어울려서 어떤 무리 사이에 끼어있으면 굳이 행복지원센터에 불려다닐 일도 별종 취급 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눈치껏 웃고 어울리다가 눈치껏 돌아가면 된다는 것. 미정이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문제는 다만, 그 활동들이 미정의 행복을 전혀 지원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동료들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과 속사정을 터놓을만큼 가깝지도 않다. 사실 미정에게 진심으로 가까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안이 텅 빈 것 같다고, 가끔 난 나를 속박하는 모든 것이 정말 미치도록 싫다고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다. 심지어는 어떤 개새끼가 내 돈을 들고 날라서는 더 뻔뻔하고 당당하게 군다는 것마저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모두가 미정을 배척하기 때문은 아니다. 손을 내밀고 입을 열면 누군가는 들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정은 그런 일에 익숙하지 않다. 아무렇지 않게 눈을 맞추고 속을 터놓고 때로는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를 일을 뱉어내는 것이- 미정에게는 가장 어렵다.

꼭, 그렇게 솔직한 순간을 향해 달려갈 수 없도록 뭔가에 묶여있기라도 한 것처럼.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세상엔 정말로 나를 하찮게 보는 인간들 밖에 없는지 모른다. 아니, 꼭 그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실이든 아니든, 내가 세상앞에 쪼그라든 느낌이 드는 건 매한가지일테니까.

나를 하찮게 보는 눈빛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헤어질 이유를 만들어야했다던 창희의 말처럼, 어쩌면 기정과 미정 역시 그런 시선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내내 눈돌리려 애쓰며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창희가 '또 다른 이유'를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면, 기정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를 인정해줄 누군가를 찾는 방식으로, 미정은 차라리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의 방식으로. 그렇다면 우리를 묶는 것은 타인의 시선인가. 누군가의 진실한 사랑만 받는다면 이 모든게 해결되는 걸까. 아니, 정말로 그럴까. 세상에 그런 사랑이 있기나 할까. 만약 그런게 없는 거라면 내가 갇혀있는 곳은 어디이고, 나를 묶은 속박의 끈은 무엇이라 이름붙여야 할까.

대체로 얌전히 주변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온 미정은 이제 조금 더 주도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생활을 돌아본다. 아직 나를 묶고 있는 그 끈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사실이다. 이 끈을 끊어내고, 나를 가둔 틀을 뚫고 저 밖으로 나가고 싶다. 그런 사랑이 없다면 그런 사랑을 빚어내면 된다. 단 한번도 채워진 적 없는 삶을 이번만은 가득 채워볼 작정이다. 무엇에 갇혔는지도 모르는 내가 부디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설마. 불행하지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은 지금 이 상태가 삶의 정의는 아닐 테니까.

회사의 새로운 동호회. '해방클럽'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미정을 주축으로 모인 사원 셋은 사실 회사에서 가장 눈에 띄지도 않고 조용한 인물들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들끼리 모여서 뭘 하겠다는 건지 동료들은 궁금해한다. 그러나 '해방클럽'이 뭘 하는 곳이냐는 동료들의 말에 미정은 정확히 대답하지 못한다. 다만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뚫고 나갈' 거라는 말.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것들을 끊어내고 뚫고 나가, 저 너머를 향해.




2. 우리가 고대하는 사랑이란

참수당하는 남편의 머리를 치마폭에 받아낸 여자.

소개팅 자리에서 기정은 자신은 그 여자의 마음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봤을 땐 그저 끔찍하고 이해도 안 갔지만 지금은 아 받겠다, 받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내 사랑이 정말 그를 향해 있다면, 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을지언정 그 떨구어진 머리만큼은 바닥에 구르도록 두지 않겠다고.

기정이 소개팅에 나가서 하고 온 저 말을 듣고 창희는 냅다 화를 낸다. 아니 왜, 남자를 만나서 대체 왜 목이 떨어지는 얘기를 하고 있느냐고. 그러나 기정은 '그런 순간이 오면' 그렇게 하겠다는 거 아니냐고 받아친다.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던 미정 역시 기정의 말에 동의한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도 그렇게 한다고.

누군가에게 사랑은 황홀한 순간만을 함께 하는 핑크빛 단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데면데면한 삼남매의 첫째인 기정에게 '사랑'이란 상대가 최악의 순간에 맞이했을 때 그가 바닥으로 떨어지게 두지는 않는 것이다. 세상이 당신의 머리를 내리쳐도 달려가 그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도록 받아내는 것. 진돗개처럼 남자를 지킨다는 그녀에게 사랑이란 그런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받아주겠다는 그 태도는 반대로 내가 바닥일 때에 떨어지지 않게 붙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에 일방적으로 영원히 이어지는 사랑은 없다. 술에 취해 중얼거리던 현아의 말처럼, 사람은 사랑하기를, 동시에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렇게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을, 누구나 갈망한다.

목이 떨어져야만 하는 거지. 비아냥 거리듯 말했지만 창희 역시 그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을 할 때, 오히려 창희는 자신의 바닥을 상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자신의 상황을 하찮게 보는 그 시선이 싫어서.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역에 한 번쯤 상대가 와주기를 기대했다. 내가 보일 수 없는 나의 바닥을 네가 궁금해해주기를.

하지만 정말 들여다보자고 했다면, 그 바닥을 보일 용기가 있기는 했던 걸까.




3. '있는 그대로의 나'를 위한 응원




바닥을 보일 용기.

어쩌면 이 이야기는 그 지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이 끈을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 다시 말해, 해방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하찮게 보는 것 같은 시선에 주눅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원하는 곳을 향해 달려나갈 용기. 나도 사랑받고 싶다고 숨김없이 말할 용기. 당신이 모르는 나의 지명을 망설임 없이 꺼낼 수 있는 용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용기.

바닥을 보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사랑할 것.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보인 바닥을, 아낌없이 응원할 것.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거."




4회의 마지막, 구 씨가 보여준 도약은 그런 의미에서 '해방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드러낸 적 없는 구 씨는 말이 아닌 움직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잘못 내린 역'에서 이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줄은 아마 그도 몰랐을 것이다. 높이, 멀리, 저 너머를 향해 뛰어오르는 그의 모습은 '뚫고 나가겠다'던 미정의 다짐과도 닮아있다. 각자를 속박하고 있는 끈을 풀어낼 기회는 그렇게 뜻밖에 순간 찾아온다. 예기치 못한 인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극의 중심인물들은 4회를 기점으로 그 맥락에서 각자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인상적인 인물들 중 하나는 삼 남매의 아버지, 제호이다. 묵묵히 제 할 일을 이어나가지만 크게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어보이는 그는 '불행하지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던 미정의 대사와 꼭 닮아있다. 평생 일을 숙명처럼 여기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자신이 무엇에 묶여있었는지도 모르는, 흔한 우리 시대의 노년. 티비 채널이 바뀌는 순간에도 꼼짝없이 화면을 들여다보는 그의 모습이, 마치 제 삶에 이루어진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여온 그의 삶 같아서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 부디 당신에게도 해방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언젠가 스스로 리모콘을 쥐고 좋아하는 채널을 감상하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도록.



+ 본 리뷰는 필자의 감상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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