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의 숲 시즌2 8회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 대한 언급이 짧게 이루어집니다. 백경사를 최조하던 황시목 검사가 소설 속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한 말을 꺼냈기 때문입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백해무익한 노인의 돈으로 젊고 창창한 자신의 학비를 대는 것은 하등 죄가 아니다’ 라는 생각에 기인하여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인물이죠.
드라마 속에는 이 <죄와 벌> 속 라스콜리니코프와 닮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전 세곡지구대 순경 ‘김수항’이 그 인물인데요. 과거 김수항은 세곡지구대에서 근무하던 송기현 경사를 따돌리는 것에 가담하고, 폭력적인 언행 역시 서슴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같은 세곡지구대 팀원들과 함께 주변 유흥업소에서 상납받는 일에 가담하기도 했었죠.
팀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팀원들의 비리를 홀로 조사하고 다니던 송기현 경사는 2년 전에 샤워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습니다. 당시에는 자살로 수사가 마무리되었지만, 현재 황시목과 한여진은 이것을 살해 사건으로 보고 진상을 조사 중이죠. 서동재 역시 이 사건을 함께 조사중에 있었습니다. 특히 실종 전 그는 행방이 묘연한 김수항을 찾는 것에 열을 올리고 있었죠.
한여진은 서동재 실종에 김수항이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그를 경찰서로 부릅니다. 뒤이어 이어진 조사에서 김수항은 눈물을 보이며 말하죠. 교도소에서 목회활동을 접하며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고요. 주변의 증언 역시 김수항이 지금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며 굉장히 성실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뒷받침해주죠.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이런 변화가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와 닮아있다는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내내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이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이야기의 끝에 가서 연인인 소냐의 사랑과 종교의 힘으로 정신적인 갱생을 이루는 것처럼 암시되는데요. 이 모습은 교도소에서 종교를 만나 깨달음과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말하는 김수항의 모습과 닮아있죠.
8회의 이 장면을 잘 살펴보면, 황시목이 <죄와 벌>이라는 소설을 언급한 이후 화면을 전환하며 바로 김수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교차점에서 들리는 김수항의 대사는 ‘교도소에서 목회활동을 접하면서 많이 반성하고 깨달았습니다.’ 이죠.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는 ‘설거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설거지는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행위라고 볼 수 있죠. 아마도 범인은 누군가를 해치는 자신의 행위를 더러운 죄악을 심판하는 정의로운 행동으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더 가치있는 존재를 위해 가치 없는 존재를 해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믿었던 라스콜리니코프의 비뚤어진 신념과 닮아있죠. 취조 장면에서 라스콜리니코프와 김수항의 공통점이 은연중에 암시된 것을 보면, 혹시 서동재를 납치한 범인이 바로 김수항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물론 다른 인물이 범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드라마에서 서동재의 아내는 경찰의 제안에 따라 남편을 찾기 위한 동영상을 찍어 업로드하는데요. 이 때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쓰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등장하죠. 마치 범인인 것처럼 암시된 이 인물은, 김수항라고 하기에는 다소 체구가 왜소해보입니다. 어둠 속이어서 잘 분별이 되지는 않지만,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도 보다 곱고 작게 보이죠.
한여진과 황시목의 조사에 따르면, 범인은 서동재를 제압하고 들고 갈 수 있을만큼 체구가 커야 합니다. 하지만 범인이 한 명이 아니라면, 공범들 중 하나는 체구가 작고 왜소한 사람일지도 모르죠. 이런 맥락을 따라 보면, 극 중에서 의심스럽게 비춰지는 또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정민하 검사입니다.
정민하는 시보 시절을 서동재의 방에서 보냈는데요. 서동재를 걱정하는 그녀의 행동에는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가끔 그녀를 바라보는 황시목의 표정을 보면, 그 이상한 낌새를 그도 느끼고 있는 듯 보이죠. 또 서동재와 통화를 했던 인물들 중에 체구가 작은 인물을 추려보면, 극 초반부에 나왔던 통영 사건의 생존 학생을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명확한 연결고리가 아직은 보이지 않죠.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암시를 미루어 보아, 김수항이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이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역시 <비밀의 숲>의 매력은 예기치 못한 전개에 있으니, 이후에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죠.
7회와 8회에서는 범인에 대한 암시 뿐 아니라, 과거 ‘박광수 검사 사망 사건’과 관련된 단서들도 여럿 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휘몰아친 회차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초반부에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착실하게 그린 설계도 위에, 드디어 본격적인 사건들이 착착 쌓여나가는 듯 보입니다. 다음 주 방송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일단은 서동재 사건부터 빨리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범인이 누구든, 다음주 쯤에는 동재가 부디, 살아서 돌아올 수 있기를. 이대로 떠나면 안 돼 서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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