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기억 속의 클래식은 어떤 형태인가요?
저는 클래식, 하면 떠오르는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은 제가 아는 선배를 따라 처음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간 날이었어요.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선배가 지인에게 표를 얻었다고 해서 뭔지도 모르지만 일단 가보자고 따라나선 거였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클래식에 대해 지식이 많지 않지만, 그 때는 지금보다도 더 문외한이었거든요. 예술의 전당도 처음 가보는 거라 혼자 막 두근두근 했던 기억이 나네요. 뭔지 모르게 들뜨는 기분이었는데, 그게 좀 부끄러워서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던게 지금도 생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냥 좋으면 좋다고 하면 될걸.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첫 회에서도 예술의 전당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송아는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설 생각에 잔뜩 부풀지만, 꼴찌라는 이유로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죠. 그 때 송아는 무대에 연결된 작은 창을 통해서 동기들과 준영의 무대를 지켜봅니다. 닫힌 문의 건너편에는 송아가 꿈꾸던 세계가 있습니다. 손에 잡힐듯 멀리 있는 꿈. 그 안에서 쏟아지는 음악의 찬란함이 송아를 더 초라하게, 그리고 더 간절하게 만들죠.
첫 회의 시작점에서 그토록 뜨겁게 피어오른 이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데요. 이 피아노 협주곡 제 2번은 그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2005년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일본 드라마에서 중요한 곡으로 삽입된 적도 있죠. 그 드라마도 클래식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주인공을 한 작품이었는데요. 몇 년 전에 <내일도 칸타빌레>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습니다.
과거 드라마 속에서 처음 이 작품을 접한 뒤에, 웅장하게 시작하는 도입부가 너무 좋아서 제1악장을 종종 듣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강렬하게 시작하는 도입부와 달리 뒷부분에서는 환하게 벅차오르는 분위기로 전환되는데, 그 순간에 괜히 울컥하는 기분을 들게 하는 음악이에요. 클래식 음악을 전혀 모르는 저에게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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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예술의 전당 공연에서의 첫번째 만남 이후 준영과 송아는 우연처럼 자꾸만 마주치게 됩니다. 그 중 한번은 경후문화재단의 리허설룸에서였죠. 그 리허설룸에서 준영이 연주하고 있던 곡은 드라마 1회의 제목이기도 했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입니다. '트로이메라이'는 슈만의 소곡집 <어린이의 정경>에 수록된 7번째 곡이에요. <어린이의 정경>은 슈만이 소년시절을 생각하면서 작곡한 30곡 중 13곡을 골라서 만든 소곡집이라고 해요. 그 중에서도 드라마에 등장한 '트로이메라이'는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하네요.
준영에게 '트로이메라이'는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온 정경을 의미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2회에서 정경에 대한 마음을 거두기로 한 준영은, 이제 다시는 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마지막으로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죠. 그는 그 순간만큼은 타인의 기준이나 평가와 관계없는 연주를 합니다. 그건 말로 전할 수 없는 정경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이면서, 오래 품어온 마음을 정리하는 자신을 위로하는 연주였습니다.

2회의 말미에서 송아는 이 때 들은 준영의 '트로이메라이'가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연주 속에 담긴 준영의 진심을 느낀 것이겠죠.
포스팅 하기 전에 호로비츠가 연주한 '트로이메라이'를 유튜브 영상을 보았는데, 뭔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어요. 맑아서 오히려 슬픈 아침같은 느낌. 링크를 따로 가져오지는 않았는데,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서 들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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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회에서는 송아가 준영의 페이지 터너 역할을 해주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때 흘러나온 곡의 제목은 라벨의 '치간느'입니다. '치간느'는 라벨이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옐리 다라니'를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해요. 1922년 라벨은 작은 연주회에서 옐리 다라니의 연주를 본 뒤에, 그녀에게 집시 헝가리 노래를 연주해 볼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옐리 다라니는 그것에 응했고, 그녀의 연주는 라벨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고 해요. 그 이후 그는 2년만에 이 곡 '치간느'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드라마 속 '치간느'가 연주되는 장면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 양이 처음 등장하기도 합니다. 고소현 양은 이 드라마에서 바이올린 영재인 '양지원' 역을 맡고 있습니다. 2회에서는 연주하는 장면만 잠시 나왔는데, 앞으로 어떤 캐릭터로 등장할지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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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기억 속의 클래식은 어떤 모습인가요? 사실 생각해보면, 클래식은 항상 우리 근처에 있죠. 익숙한 알람이나 벨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 생각해보니 곡의 이름은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귀에 익은 곡들도 많더라고요.
클래식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지만, 가능하다면 매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나오는 곡들을 포스팅해보려고 합니다. 드라마를 보다보니 어떤 곡들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관심도 생겨서요. 사실 근데 저는 정말 클래식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ㅋㅋ) 계획대로 잘 될 지는 모르겠네요. 일단 소심하게 다음주를 기약해 보겠습니다.
혹시 오늘 올린 포스팅에 보강해야하거나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꼭 알려주세요! 클래식 덕후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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